9회말 2아웃 마지막회에서는, 그동안 미처 눈여겨 보지 못한 부분이 많이 보이더라. 승완이의 죽음과, 그 죽음을 받아들인 나머지 친구들의 20대의 삶.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 작가는 '청춘'을 그리고 싶었다던데, 승완이란 친구를 떠나보낸 사건을 통해서도 청춘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10년전, 사고로 일찍 떠난 학교 신문사의 한 선배가 있다. 나보다 두살위의, 내가 학교에 들어오기 2년전의 일이었다. 새내기 시절 들은 이 소식은 좀 무겁기도 했지만, 그만큼 진지하기도 했다. 선배 어머니는 그 선배가 좋아했다던 음식을 들고 신문사에 찾아오셨었고, 우리는 어색하면서도 쑥스러운 자리 한켠에 앉아있고는 했다. 선배들은 추모문집을 준비했다. 겨울에는 다 같이 그 선배 유해가 뿌려진 금강으로 추모제를 지내러 간다고 했다.
그때, 솔직히 나는. 그 선배를 어떻게 기억해야 한다는 건지 잘 알지 못했다. 먼저 떠난 선배가 안타깝기는 했지만, 내가 본적조차 없는 선배의 죽음을 기리는게 절실히 와닿지 않았다. 그저 죽음앞에 경건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많은 선배들이 기억하고 슬퍼하는 걸 보면서 막연히 의미있는 일이리라 여겼었다. 아까운 나이에 죽은 사람, 나와 가까운 이의 가까운 이 - 라서 더 안타까운. 그런 심정이었던것 같다.
그러던 그해 겨울. 그 선배의 추모 문집을 읽으면서 울었던 적이 있다.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던 시기였다. 사람이 어렵고, 일은 바쁘고, 열심히 산다는게 뭔지 벅차게만 느껴지던 - 그런 새내기 시절이 끝나가는 즈음이었다. 그 선배가 1학년때 썼다던 날적이 글들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차올랐다. 선배의 사연이 슬퍼서도, 선배의 죽음이 안타까워서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본적조차 없는 이 선배도, 이렇게 힘든걸 다 알고 있었구나... 싶어 복받쳤던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누군가의 위로와 격려가 필요했다. 지금의 니가 겪고 있는 힘듦이, 절대 쓸모없는게 아니라고,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거라고 말해주는. 그런 확신에 찬 격려나, 진심어린 위로가 듣고 싶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그 선배를 왜 기리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얼굴조차 본적없는 후배들이 그 선배 앞에서, 열심히 살겠다며 다짐하는게 왜 의미가 있다는 건지 조금은. 이해가 갔다.
9회말 2아웃에서 10년전 스무살 승완이의 꿈은, 이제 서른이 된 나머지 친구들에게 지금의 삶에 대한 위로와, 한편으로는 자극이 되었을 것이다. '나에겐 잊고 싶었던 기억이 승완이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꿈이었어'라고 눈물짓는 성아나, 아플때마다 '꿈? 더 살아보고 결정할래'라던 승완이의 생전 모습을 되새김질하는 난희처럼. '이게 내 친구가 살고 싶었던 청춘'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또 격려하면서 10년을 살아왔을 것이다.
솔직히 이런 말을 하고 있지만, 그렇게 '남은 사람'으로 살아간다는게 어떤건지 - 나는 잘 모른다. 내내 잊고 살다가, 선배 기일쯤 연락을 받고서야 옛날 생각이 가물가물 떠오를 정도니까. 하지만 10년전 떠난 사람을 기억하며 추모신문을 준비한다는 선배들을 보면, 내가 짐작하고 이해하는 것보다 그 마음의 크기가 큰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런 생각이 이제서야 든건 그동안 9회말 2아웃에서 난희와 형태의 사랑 이야기에만 관심을 기울였던 탓인지, 아니면 마침 이날 추모신문을 준비하는 선배들을 만났기 때문인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