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e스포츠 내에서의 '관광'이라는 단어는, 누가 뭐래도 '강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상대방을 압도하며 농락거리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경기양상이 나왔을때 '강간했다' '강간당했다' 라는 식으로 쓰이던 말이었다. 이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게임에서 상대방을 잔인하게 굴복시켰을때의 쾌감을, 사람을 성적으로 지배하고 몰락시켰을때의 쾌감과 등치시키고, 비유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그런데 어느 새부터, 이 단어가 '관광'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실 이는 문제제기나 그에 따른 언어순화 노력때문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이 단어를 즐겨 사용하던 사람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대체된 부분이 크다. 한마디로 '강간'을 대놓고 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검열제 이전의 DC에서 조차 이는 '부적절한 단어로 등록이 불가'했었고, 일반적인 커뮤니티에서 저 정도의 단어를 쓸만큼 용감 - 몰지각한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쓰고 싶은데 쓸 수 없는 단어라니 어쩌겠는가. 바꿔서 말해야지. 그래서 그들은 적극적으로 '관광당했다' '관광시켰다'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그거다. 이들이 처음부터 '관광'이라는 단어를 여행 보내주는 것, 이라는 의도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저, '발음이 비슷하고, 활용 어법이 비슷한(시키다, 당하다라는 어미가 자연스러운) 단어'였을 뿐이다.
그러면 그 단어도 안 쓰면 그 뿐이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문제는 그 다음에 있었다. 이 '관광'이라는 말이, 그 의도와 상관없이, 유머러스한 뜻을 연상시키는 쪽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 단어는 <멀리 보내버릴테니 관광이나 하고 와라, 돌이킬수 없을 만큼 대세가 기울었으니 유희를 즐겨라> 이런 뜻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e스포츠와 게임리그는 점점 대중화 되었다. 새로 유입된 팬들도 늘어났고, 그 와중에 이 단어의 어원을 모르는 사람들조차 이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상대방을 압도적으로 이기는 캐릭터였던 최연성은 '(관광)버스기사'로 불리었으며 수많은 합성작품(짤방)이 등장했다. 그는 공식적인 석상에서 '버스 운전 하려구요'라는 인터뷰를 한다. 또한 (관광을) 안드로메다까지 보내주겠다, 는 말도 유행하면서, 박지호 역시 '가야죠~ 안드로메다'라고 발언하게 된다. (둘 다 재작년정도의 온게임넷 스타리그 조지명식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얼마전 마재윤은, MSL 조지명식에서 '관광 당할 준비하셔야겠네요'라고 노골적으로 발언하기에 이르렀다.
어떻게 봐야 할까? 단어의 어원이 불쾌하니 사용해서는 안 되는 단어인가? 아니면 이미 대중적인 의미로 통용되고 있으니 사용해도 큰 무리가 없는가?
어떠한 상징과 코드는 문화 발전의 촉매제가 된다. '관광'이라는 말이 보급된것도 이 단어가 e스포츠에서의 어떤 캐릭터나 경기양상을 비유하는데 적절했고, 무엇보다 '재밌었기' 때문이다. (버스를 운전하는 최연성의 합성사진은 얼마나 직관적이고 유쾌한가. 버스 운전기사와 승객이라는 코드 또한 그렇다.)
지금에 와서 '관광'이라는 단어를 금지해야 한다는 식의 반응은 '오버' 일 수 있다. 이 단어에서 그런 의도를 연상하는 것 자체가 '의식적이어야' 가능한 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단어를 쓰는 사람을 몰아붙일 필요도 없다고 본다. 이 단어의 사용자들은, 폭력성을 보급하자는게 아니라 그저 유쾌한 상징과 비유를 하고 싶을 뿐이니까.
하지만, 이 '관광'이라는 단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가 된다.
'관광'이라는 단어의 뜻이 '강간처럼 굴욕시키겠다'가 전자, '여행처럼 멀리 보내버리자'는 것이 후자의 뜻이라고 하자. 이 단어를 후자의 의도로 사용하는게 보다 선명해서 굳이 전자의 의미를 떠올리지 않게 될 때에는, 이는 그저 유머러스한 코드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버스기사 최연성이라는 캐릭터에서 상대방에게 폭력과 잔인함을 떠올리기 보다는, 압도적인 실력과 통쾌한 마무리를 상상하는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공식적인 석상에서 '관광시키겠다' 라는 언급은,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충분히 전자의 의미로 느껴질수도 있고, 이는 상대방이나 보는 이들에게 불쾌한 상황이 된다.
마재윤의 발언 '관광당할 준비 하셔야 겠네요'가 문제가 되는 건, 마재윤의 탓이라기보다는 그런 말이 여과없이 진행된 방송과, 그 방송을 진행한 이들 및 제작자들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 그러면서 예고방송 등으로 그 발언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 에 있다. 방송에서 그런 발언을 '인정' 해버린다면, 그것이야 말로 그 단어를 e스포츠에서 일반적으로, 공식적으로 사용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다수 대중이 '악의없이' 사용하고 있다 하더라도, 일단 그 어원과 내포된 의미는 분명하다. 다른 사람에 대한 폭력과 농락인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뜻이 변해왔다고 해도 어떤 사람들은 '그 어원의 의미대로 사용하고 있는' 이상, 이는 충분히 문제가 된다. 어떤 이들은 '내가 널 관광시켜줄께'라는 말에 폭력성을 담고 있을수도, 어떤 이들은 그 말을 들으며 언어폭력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쓰고 있는걸 어떻게 하느냐고 생각할수도 있다. 사실 언어라는게 그렇다. 금지한다고 되는것도 아니지 않은가. 욕설을 백날 금지해봐야 안 쓰는 것도 아닌 것처럼. 그러나 우리는 그 언어문화를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공식석상에서 욕설을 하지 않는것도, 비속어를 쓰지 않는것도 그런 걸테고.
그래서, 이 '관광'이라는 말이 방송에 거리낌없이 표출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라는 것쯤은 공론화 되어야 한다고 본다. 간단하다. 본디 어원도 안 좋은 말, 굳이 방송에서 쓸 것까지야 없다는거다. 아예 안 쓰게 되면 더 좋은 일이고.
덧.
'이 단어를 쓰지 말자'고 하는데, '많은 욕설과 비속어도 여성비하에 폭력적이잖아?'라고 항변하는 건 사실 우습다. 이미 '관광'이라는 단어가 욕설과 비속어와 같을 뿐이라고 인정하고 있는 거잖아. 근데 저렇게 반응하는 사람도 꽤 많아서, 그 사람들에게는 논리보다는 '감정'의 문제임을 새삼. 그리고 굳이 욕설과 비속어가 아니더라도, 어원이 좋지 않은 단어는 쓰지 않는게 바람직한 언어사용이랍니다.
덧2.
예전에 '관광이라는게 선배가 많이 보는 게임에서 쓰던 안 좋은 단어라면서요?'라는 후배들의 말에 고민해봤던 문제를 이제야 정리. 마재윤의 저 발언은 좀 지난 일인데, 얼마전에 한 기자가 '발끈'해서 쓴 기사가 있길래 다시금 정리하는 차원에서 잡설. 뭐 그 기사는 논리가 비약적이긴 하지만(글이 좀 부실해서), 문제제기 자체는 옳았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