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몇분만 걸어가면, 재래시장이 있다. 가게들 위로 천막이 이어져 있어서 비를 막는 형태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꽤 큰 재래시장. 오늘은 오랜만에 장을 조금 봤다. 장을 본다고 해봐야 기껏 자취생(?)의 필수품인 계란이나 김 따위를 사다놓는 정도지만. 뭐 요즘은 양파라던가, 멸치라던가. 몇 개 품목이 늘기도 했고.
해질 무렵의 시장은, 그저 걸어다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손님을 불러모으는 바람잡이도 있고, 주섬주섬 보따리를 펴시는 길거리 장사 분들도 있다. 아이들과 손잡고 걷는 부부도 있고, 손주를 업고 나오신 할머니도 보인다. 구경할게 많아서 좋다.
대형마트에서 시원한 에어콘 바람을 쐬며 카트에 이것저것 담아가면서 쇼핑하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지만 역시 재래시장을 돌아다니는 것만은 못하다. 뭔가 사람 냄새가 덜 나서 그런가.
대형마트에서의 쇼핑은, 그렇다. 몇개 묶어서 얼마, 뭐뭐가 덤으로 붙어서 얼마. 손해보면서도 전략적으로 공급한다는, 몇개 한정! 이런 제품을 살때 뿌듯하기도 하고, 찍어둔 제품이 갑자기 세일할때 사는 맛도 있다. 얼마치 이상 사면 주는 사은품 같은것도 있고. 이런 틈새에서는 나도 모르게 '많이 사다두면 좋잖아', '쌀때 사놔야지', '덤이라니까 그냥 살까?' 이런 생각에 젖어들게 된다. 그래서 결국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사들고 나오기 마련.
그렇지만 재래시장에서는, 꼼꼼히 지갑을 열어보고 가격을 비교하고 흥정도 해보는, 그런 맛이 있다. 1000원에 3개짜리 호박을, 4개에 1000원씩 묶어파는데 '혼자 먹는데 2개만 주시면 안돼요?' 라고 흥정해본다. 1모에 500원짜리 두부를 3모에 1000씩 팔아도, 그냥 1모만 산다. 포인트나 사은품 같은 건 없지만, 대신 덤이 있다. 저번에 사간 양상추가 금방 시들더라고 하니, 새로 사는 양상추 값을 받지 않으시던 그런 아주머니도 있고. 여기저기 들러서 이것도 사고 저것도 사고 하다보면 지갑속에 동전만 찰랑찰랑. 이건 다음에 사야지, 라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그런 마무리가 된다.
이런 차이가 '사람냄새'로 느껴지는걸까.
뭐, 이런 경험 따위가 재래시장과 대형마트의 본질적인 차이라고 볼수는 없다. 큰맘먹고 쇼핑하려 할때 대형마트를 가고, 작은 돈으로 알뜰하게 살아보자 할때 시장을 가는 경우가 많아서 그럴 가능성이 크니까. 그리고 개인 취향의 차이일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대형마트들이 생겨나면서 재래시장이 죽어가고, 대기업은 더 배불러가고 비정규직은 늘어나고. 지방경제와 서민 살림은 무너져가는... 그런 현실이 있어서인지, 그렇게 쉽게 넘겨지는 경험만도 아니다.
물건을 사고 파는 그런 곳에서도 사람 냄새가 남아있길 바라는 욕심이, 과한 욕심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