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네이버 검색어를 달궜다던 불어녀. 무슨 프랑스어를 잘하는 미녀 동영상이라도 뜬 줄 알았다. 근데 '불어'라고 했다고 해서 불어녀란다. XX녀, 이제 지긋지긋할때도 되지 않았나.
미인에 대한 찬양을 가장한 성상품화 - 엘프녀로 시작해서, 여성들의 문화생활을 비난할 수 있는 면죄부 - 된장녀, 군대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를 화풀이한 대상 - 군삼녀까지. 앞으로 얼마나 더 XX녀라는 이름을 붙여야 속시원할런지.
이 '불어녀'라는 호칭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는, 이성을 가지고 생각해보면 간단한 문제다.
억울하게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는 한 남성의 사연에는, 많은 이들에게 책임이 있다. 거짓진술을 조장했던 전 아내와 아이들의 이모는 물론이고, 경찰의 조사 단계부터 재판까지 -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잘못, 혹은 직무유기가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잘못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허점 투성이인 제도와 법률은 말할것도 없다. 그리고 이러한 소동을 낳은 원래 기사에서는, 문제점을 8개로 지목해서 분석하고자 했다.
기사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03469.html
이 억울한 사람의 사연에 분노하는 심정은, 이런 모든것들에 대한 논의로 이어져야 응당하다. 아니 백번 양보해서 감정적으로 반응한다고 해도, 이 남자의 전 아내와 이모에 대한 비난이 가해져야 정상이다.
그런데 고압적인 수사 분위기를 서술하려 했을 기자의 인용, '이런 변태! 빨리 불어'라는 한마디와 그 한마디를 내뱉은 사람이 '여자 경찰관'이었다는 점을 놓치지 않은 '먹이꾼(마초라는 말을 붙여주기도 아깝다)'들이 문제였다. 그들은 이 모든것에 대한 분노를, 한 여성에 대한 공격으로 해소하고자 한다. (굳이 여자 경찰관을 강조해 억울한 남성을 부각시키려 한 기자에게도 문제가 있다)
그리고는 'XX녀 소동'의 메커니즘이 발동된다.
인터넷 기사 한줄 - 댓글에서 시작되는 폭력과 공격 - 그 공격이 '네티즌의 분노'라고 이름 붙여져 기사화 - 기사 때문에 검색어에 등장 - 그 검색어로 인한 폭력의 확산
대다수의 사람들을 선동시키는 이 작용은, 매우 정치적이고 위험하다. 특히 이러한 XX녀의 칭호는, 어떤 여성을 순식간에 다수 대중의 '공격 타겟'으로 등장시킨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폭력적이다.
한 인간에 대한 다수의 폭력에 대해서는 누구나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 왕따와 이지메가 사회적 문제인가. 이는 다수가 소수에 행하는 최악의 폭력형태이기 때문이다. 소수는 대항하면 대항하는대로, 참으면 참는대로, 회피하면 회피하는대로 더 큰 폭력을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침묵하는 다수는, 자신이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가해자의 편에 서게 된다.
한 인간에 '녀'자가 붙는 순간, 사람들은 이 다수vs소수 폭력의 한 당사자가 된다. 많은 남성들은 순식간에 약자가 아닌 강자, 소수가 아닌 다수의 대열에 서게 된다. 그들은 이 폭력의 대상에서 벗어나고, 폭력행위에 쉽게 동참한다. '원래 문제가 많은 소수'라는 믿음이 그들을 부추긴다. 그리고 많은 여성들은 그 피해자의 대열에 합류하고 싶지 않다는 본능때문에 이 문제를 외면하거나, 묵인하거나, 동조하기까지 한다. 싸움에 나선 여성들은, 그 XX녀로 칭해지면서 폭력을 감수해야 했음은 물론이다.
싸움을 먹고 사는 언론은 이들을 부추기고, XX녀에 대한 공격과 폭력은 확산된다.
XX녀라는 호칭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 호기심은 쉽게 '이슈'를 만들어주고, 이슈화된 덕분에 다수가 동참할수록, 이 다수의 폭력은 정의감으로 둔갑된다.
된장녀 비난에 한몫했던 그 '정의로운 남성'들은 자신들이 한국 문화의 가치관을 정립하는냥 행동했고, 여성들의 취향은 정의의 도마에 올라야 했다. 군삼녀에 대한 '배은망덕한 여성'이라는 비난은, 여자들에게 군대 문제에 대한 발언권을 다시한번, 뺏아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폭력행위에 자부심을 느끼는 인간들까지 존재했다. 인터넷에는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고 예찬하는 수많은 군상들로 넘쳐났으니까.
XX녀라는 비난은, 구구절절한 논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벌어지는 소동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을 자극하고, 그 과정은 무책임하다. 제도와 사회에 대한 분노는 책임을 요구한다. 그러나 한 인간, 특히 약자에 대한 비난은 매우 손쉽고, 무책임하다.
명품에 미쳐가는 대한민국에 대한 분노는 한국사회의 계급문화에 대한 고민을 낳아야 하지만, 이들은 이를 '명품에 환장하는 여성'에 대한 비난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군복무에 대한 괴로움은 군대와 징병제에 대한 고찰을 요구하지만, 이들은 '군대도 안가면서 말 많은 한 여성'에 대한 비난을 통해 자신의 박탈감을 보상받고자 한다.
한 피해자의 억울한 사연은 사법제도와 수사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필요로 하지만, 이들은 '호통친 여성'에 대한 공격으로 자신들의 감정을 해소하려는 것이다.
엘프녀처럼, 그 행위가 공격이 아닌 경우에도 문제는 다르지 않다. XX녀는 '대상'으로 존재한다. 똑같이 응원을 하는 주체가 아니라 예쁘고 몸매좋은 여성으로 부각되고, 상품화 된다. 그들은 성적 대상으로 소비되고, 연예 기획으로 상품화 된다. XX녀는 여성을 '대상'으로 만들고 바라보는 것, 그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다.
XX녀라는 검색어를 쳐 본 사람들은, 그저 호기심 충족에 만족한 채 창을 닫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 모든 소동에는, 무시할수 없는 폭력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 폭력이, 'XX녀'의 본질이다.
덧.
기사를 썼던 한겨레는, 이 소동에 별로 부끄러워하지는 않는 것 같다. 오히려 불어녀가 검색어 순위에까지 오른 것을 뿌듯해하는 듯한 뉘앙스까지 엿보인다. 억울한 남성을 부각시키기위해 부러 고압적인 여성상을 강조시킨 건 문제가 있다. 기사에 등장한 한 단면의 묘사가 전부였다면 더더욱. 이 사태에 대한 최소한 책임감은 느껴야 하는것 아닌가.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035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