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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6  신사임당 (2)
신사임당
잡설 2007/11/06 14:43
어릴적 위인전을 많이도 읽었다. 집에 있던 위인전 전집에는 각양각색의 위인들이 있었다. 과학이나 기술, 정치나 도덕 등등 다양한 업적을 이룬 위인들, 그리고 그런 위인들의 어린시절 이야기들이 실려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위인전 독후감 숙제를 내면 여자애들 중 열이면 예닐곱은 '신사임당'을 읽고 독후감을 써왔다. 결론은 간단했다. 저도 현모양처가 되겠어요, 라고. 아~ 난 신사임당 말고 다른 인물로 숙제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여자로 하고 싶었다. 그런데 여성 위인 자체가 몇 되지 않았다. 신사임당, 유관순.... 더 있었나?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몇 안되는 여성 인물들 중, 내 역할 모델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아니, 없었다. 특히, 신사임당은 절대 아니었다.

난 과학자가, 예술가가, 정치가가 되고 싶었다. 그런 과학자와, 예술가와, 정치가의 '아내'가 아니라.

요즘 애들이 들으면 코웃음칠지도 모르겠지만, 그땐 진지하게 현모양처의 의미를 토론하기도 했다. 아, 지겨워. 난 신사임당이 존경스럽다기보다는, 억울했다. 아니 그렇게 뛰어났다는 사람이 현모양처라고만 불렸던 그 시대가 싫었다. 그리고 궁금하고 답답했다. 왜 여자가 그림을 그리면 신기해 했을까? 왜 여자가 뛰어나면 남자들이 싫어하지? 왜 그 시대에 여성들은 그렇게 핍박받아야 했지? 그저 유교문화때문에?

신사임당의 현모양처 기질을 감탄해하기 이전에, 그런걸 배웠어야 했다. 그리고 지금 시대는 얼마나 달라졌는지, 얼마나 발전했는지도 토론해봤어야 했다. 우리가 아직도 앞다투어 신사임당을 배워야 하는지, 왜 여자는 훌륭한 남편을 '내조'하면서 인정받아야 하는지 말이다.

현모양처는 여성의 수많은 역할모델 중 단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여성의 수많은 가치와 가능성을 '아내'와 어머니'의 이름안에만 가두어왔다. 그리고, 가정의 소중한 가치를 여성에게 떠넘겨 온 것이기도 하다. 내조는 아내가 남편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부부간에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가치로 바뀌어야 하고, 자식을 위한 희생과 사랑은  여성의 미덕으로 칭송될것이 아니라, 부모라면 자식을 위해 갖추어야 할 가치가 되어야 한다.

참, 유치한 일 아닌가. 가족 구성원들 중 한사람에게 그 모든 가치와 책임감과 의무를 떠넘기는 것이.

누가 현모양처를 나쁘다고 했나, 현모양처를 강요하는 사회가 나쁘다고 했지.
누가 어머니들을 욕되게 했나, 바로 그런 어머니들이야말로 좀 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되길 바라는거지.

우리 어머니는 대학에 가고싶은 꿈이 있었으나,
여자라는 이유로 남동생의 공부 뒷바라지를 해야 했고,
우리 어머니는 여유롭게 공부도 취미생활도 하고 싶으셨으나,
가정형편때문에 부업에 매달리셔야 했다.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와 똑같이 일을 하면서도,
청소도 빨래도 음식도 그 모든 집안일을 도맡으셔야 했다.

그런 어머니를 나는 더없이 존경하지만, 내게 그 어떤 기회와 조건이 주어진다면. 이젠 어머니에게 다른 삶을 살게 해 드리고 싶다.

이제야 여성인물이 처음으로 화폐에 등장한 것도 우습지만, 그 인물이 신사임당이라니 더 우습다. 신사임당의 인격과 자질을 배우기 이전에 - 그보다는 그런 인물을 보며 유교문화의 잔재와 남존여비사상의 그릇됨, 그 시대의 모순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덧)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사임당 별로네~'하고 지나칠거 같은데. 뭐 나도 그랬고. 간단한 문제 아니었어? 근데 꼭,  여성계를 몰아붙이면서 뭐라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아니 신사임당 반대한다는데 그게 무슨 잘못? 아니 막말로 싫어하는데 무슨 상관? 의견이 다르면 다른거지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은 참... 딴지는 여성계가 거는게 아니라 그 반대에 가깝다. 정말 늑대가 따로 없다. 암튼 그런 글들 보고 있으면 괜히 울컥, 하는 것이. 요상한 인터넷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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